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접한 건 <그 남자네 집>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국문학도 치고 독서량이 많은 편이 아니다. 더군다나 소설은 기피하기도 했다.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하면 이입하게 되고, 읽는 동안 힘들어서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글밥 먹고사는 사람이라 그래도 읽어야 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늦었지만 문학작품을 접하기로 마음먹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그 남자네 집>이었다. 술술 읽었다. 한국 문학이 이렇게 재밌을 수가?! 솔직 담백하고, 우리말 표현이 참 재밌었다.
부끄럽지만 느낌표 선정도서로만 기억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렇게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또 골랐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선정 도서여서, 유명한 책이라고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책을 읽을수록 '느낌표의 선정도서' 였다고만 기억하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감히 내가 겪지 않고서 가늠할 수 없는 깊이였다. 2021년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영화나 드라마로 간접적으로 경험한 배경 지식들을 동원해 작품 주인공의 삶에 이입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일제강점기 말부터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겪은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은 일제강점기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방을 맞이하고, 대학 합격과 함께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만다. 여기서 '싱아'는 주인공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싱아란?
1930년대, 주인공 '나'는 7살에 개풍군 박적골에서 어머니의 교육열에 서울로 오게 된다. 그 당시 지게꾼에게 돈을 주고, 짐을 지게 하고 서울역에서 현저동까지 걸었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이 흥미로웠다. 이 시대에는 서울로 상경하는 사람들의 짐을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지게꾼이 있었다. 이동수단이 지금과 같지 않았고, 좁은 골목과 비탈길이 많았던 시절, 지게꾼은 하나의 직업이었다. 지게꾼과 흥정을 벌이는 건 당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은 서울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은 서울이구나 싶었다. 돈을 벌기 위해, 교육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위해 사람들은 서울로 몰렸고, 서울로 올라오거나 내려온 사람들은 서울에 먼 친척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자 큰 위안이었다. 우리 모두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산다. 돈벌이를 위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간다. 양반가였지만, 큰 도시에 오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 일이 기생 바느질품일지라도 돈이 되고, 자식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주인공'나'와 오빠 교육을 위해 엄마가 친척의 소개로 시작한 기생 바느질품)
읽는 내내 '아, 이땐 이랬구나...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그 당시라면 어떤 꿈을 꾸며 컸을까..' 등 내가 경험하지 않은 시대였기에 흥미로웠고,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이 숙연하면서도 감히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어린 시절 박적골 생활을 그리워하며, 친구들과 박적골을 누볐던 모습을 그리는 대목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좋은 글이란 눈으로 보이고, 그림으로 그려지는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이 그러했다.
시대를 그린 작품이라 모르는 단어들이 꽤 많았다. 우리말도 있었고, 일본어 말도 있었다. 이 책을 다음에 읽었을 때, 혹은 누군가에게 이 책을 빌려줬을 때, 수월하게 읽을 수 있도록 모르는 단어는 적어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다 읽고, 그 후속작으로 나온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대의 '나'가 결혼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쓴 책이다. 한국전쟁의 생생한 묘사와 이념 갈등, 삶과 죽음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 겪었던
개인적 비극이자 민족의 비극이 촘촘하게 그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삶의 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니크한 패션 아이템으로 이건 어떠신가영? (Feat. 동생이 오픈한 악세사리 브랜드 마냐나) (0) | 2021.08.08 |
---|---|
2021 / 7월 일상 (3) | 2021.08.01 |
일상 :: 내일은 더 단단해지길 (0) | 2021.08.01 |
댓글